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클 잭슨 (문단 편집) == 평가와 업적 ==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예인 >---- >― [[BET]] [[https://www.bet.com/topics/m/michael-jackson.html|#]]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연예인 >---- >― [[베리 골디]] ([[모타운]] 설립자) [[https://www.contactmusic.com/berry-gordy/news/gordy-brings-mourners-to-their-feet-with-jackson-tribute_1108973|#]] 마이클 잭슨에 대한 주요 매체들의 평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2004 [[롤링 스톤]]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100-greatest-artists-147446/|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35위[* 뮤지션, 작곡가, 기타 음악산업 중진 등 총 56명의 패널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하였다. 2011년에 한 차례 개정하였으나 리스트에 변동은 거의 없었고 마이클 잭슨은 기존과 같은 35위를 유지하였다.] * 2015 [[롤링 스톤]] [[https://www.rollingstone.com/interactive/lists-100-greatest-songwriters/|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34위[* 롤링 스톤 집필진들이 직접 선정하였다.] * 2023 [[롤링 스톤]]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best-singers-all-time-1234642307/|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 86위 * 2020 [[어클레임드 뮤직]] [[http://acclaimedmusic.net/top_artists/t0.htm|산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29위[* 어클레임드 뮤직은 개인의 취향을 모두 배제하고 음악 평론가들, 또는 잡지 등의 매체들이 매긴 순위를 종합해서 포인트를 줘서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다. 순위가 매겨진 앨범과 곡의 리스트를 공개된 공식을 바탕으로 합해 올타임 아티스트들의 순위도 매긴다.] * 2017 [[올뮤직]] [[https://qz.com/1094962/a-definitive-list-of-the-musicians-who-influenced-our-lives-most|선정]]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션 52위[* '모든 음악'이라는 사이트 이름에 걸맞게 장르와 국적을 불문한 전 세계 온갖 음반, 뮤지션과 그에 관한 정보와 리뷰를 찾아볼 수 있다. 세계의 300만 장 이상의 온갖 음반, 100만 명 이상의 음악가의 데이터, 3,000만 이상 트랙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많이 영향을 준 아티스트의 순위를 매겼다. 구체적으로는 뮤지션들이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인터뷰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그 누적 언급빈도를 바탕으로 선정되었다.] * 2018 Vulture [[https://www.vulture.com/article/rock-and-roll-hall-of-fame-artists-ranked-from-best-to-worst.html|선정]] [[로큰롤 명예의 전당]]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60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뮤지션들 중에서만 뽑은 것이라서 명예의 전당 헌액 조건들 중 하나인 데뷔 후 경력 25년을 채우지 못한 뮤지션들은 모두 제외됐다.] * 2010 [[MTV#s-3|VH1]] [[https://www.stereogum.com/495331/vh1-100-greatest-artists-of-all-time/photo/|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2위[* 음악평론가와 현직 뮤지션, 기타 음악산업 종사자 등 총 200명 이상에게 투표를 실시하여 선정하였다. 1998년에도 VH1은 같은 주제로 현역 뮤지션들에게 투표를 실시하여 리스트를 [[http://www.rockonthenet.com/archive/1998/vh1artists.htm|발표]]했었는데 이때 마이클 잭슨의 순위는 40위였다.] * 2015 [[빌보드]] [[https://www.billboard.com/photos/best-r-and-b-singers-of-all-time-6737387/1-35-etta-james/|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R&B 뮤지션 1위[* 빌보드 집필진들이 직접 차트 성적이나 판매량 기준이 아닌 영향력, 음악적 유산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 * 2011 Essence [[https://www.essence.com/news/50-most-influential-rnb-stars/#373871|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R&B 스타 2위 * 2007 Q매거진 선정 음악사를 바꾼 21인(무순위) 포함 * 1999 [[배철수의 음악캠프]] [[https://www.donga.com/news/more19/article/all/19991017/7477662/1?comm=|선정]] 20세기 대표 아티스트 3위[* 전문가 81명이 투표한 결과이다. 청취자 1,55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마이클 잭슨은 3위에 올랐다.]}}} 2018년 영국의 [[가디언지]]는 에서 마이클 잭슨을 1위로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18/dec/13/the-30-best-boyband-members-ranked|선정]]했다. 마이클은 11살 때인 1969년, 형제들로 구성된 그룹 [[잭슨 파이브]]로 본격 데뷔해서 [[모타운]]에서의 첫 싱글 <[[I Want You Back]]>을 시작으로 1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4곡의 빌보드 1위 곡을 연속으로 배출했다. 이는 그룹 역사상 최초로 4개의 싱글이 연속으로 빌보드 1위를 석권한 것이었다. 또 13살 때 발표한 솔로 싱글 도 1위를 기록하면서 사실상 잭슨에게 무명기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기는 영원할 수 없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마이클은 차트에서 이전만큼의 성적을 거두지는 못하며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다 1978년에 발매된 앨범 잭슨스의 가 성공하고 본인이 작곡에 참여한 Shake Your Body(Down To The Ground)가 빌보드 7위를 차지하면서 다시금 인기가 오르기 시작했고 1979년 성인이 되고 제작한 첫 솔로작인 <[[Off the Wall]]> 앨범이 2,000만 장 이상 팔리고 비평적으로도 극찬을 받으면서 마이클은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기조는 1990년대 초중반까지 쭉 이어졌다. 1982년 발매된 <[[Thriller]]> 앨범은 현재까지 6,600만 장을 팔아치우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미국 내에선 [[https://www.riaa.com/gold-platinum/?tab_active=top_tallies&ttt=T1A#search_section|RIAA 공식인증]] 3,300만 장의 판매고로 [[이글스]] 베스트앨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다. 참고로 2006년 [[기네스 북]]이 [[Thriller]] 앨범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라는 타이틀을 공식 인증해 주면서 판매량을 1억 400만 장으로 발표한 것을 이유로 아직까지도 판매량을 1억 장 이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1억 장 얘기는 신빙성이 없다. 기네스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이후 자신들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량을 6,600만 장으로 [[http://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70133-best-selling-album|수정]]했기 때문이다.] 1985년 마이클과 [[라이오넬 리치]]가 공동 작사/작곡하고 20명 이상의 미국 레전드 뮤지션들이 함께 부른 <[[We Are the World]]> 역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싱글만 2000만 장 이상이 팔려 나갔는데 이는 80년대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자 현재까지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싱글 8위에 해당하는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best-selling_singles|기록]]이다. 1987년 발매된 <[[Bad]]> 앨범도 3,500만 장의 판매고[*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0위권]를 올리고 한 앨범에서 역대 최다 기록인 5곡의 빌보드 1위 곡을 배출하는 등 신기록을 세우면서[* 후에 [[케이티 페리]]가 2010년에 발표한 앨범에서도 5개의 빌보드 1위 곡이 나오면서 동일 기록.] 80년대 마이클 잭슨은 정규앨범을 단 2장만 발표하고도 인기의 최고조를 유지했다. 마이클은 1990년 [[백악관]]에서 당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데케이드(decade) 아티스트 상을 수상했고 [[빌보드]]는 앨범 판매량, 라디오 에어플레이 횟수 등 상업성 측정 지표들을 종합하여 마이클 잭슨을 80년대 대표 뮤지션으로 [[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226&bigcateidx=19|산정]]했다.[* [[잭슨 파이브]]도 1970년대 순위에서 6위에 올랐다.] 1991년 발매된 <[[Dangerous]]> 앨범도 3,200만 장 이상 팔리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0위권] 마이클 잭슨은 전성기를 이어갔는데 당시 앨범 수록곡 <[[Black or White]]> 뮤직비디오는 27개국에 동시 방송되어 [[http://community.seattletimes.nwsource.com/archive/?date=19911116&slug=1317521|5억 명]] 이상의 시청자를 끌어모아 [[기네스 북]]에 TV 역사상 가장 많이 본 뮤직 비디오 Premiere로 [[https://books.google.co.kr/books?id=rBd4BAAAQBAJ&pg=PT172&dq=guinness+black+or+white+500&hl=ko&sa=X&ved=0ahUKEwiE8KqJ5srjAhXBc3AKHV6PDk4Q6AEIJjAA#v=onepage&q=guinness%20black%20or%20white%20500&f=false|등재]]됐다. 1992년 미국의 유료 케이블 채널 [[HBO]]는 마이클의 공연을 방송하여 시청률 21.4%를 [[https://variety.com/1992/music/news/jackson-concert-sets-hbo-record-101198/amp/|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HBO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이었다. 1993년 마이클이 게스트로 출연한 <[[오프라 윈프리]] 쇼>는 현재까지도 TV 인터뷰 방송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가 본 방송으로 남아있는데 약 9,000만 명이 본 것으로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most_watched_television_interviews|집계]]됐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슈퍼볼]] 하프타임 쇼도 마이클 잭슨이 출연한 1993년부터 개념이 [[https://www.nytimes.com/2009/06/30/sports/football/30sandomir.html|정립]]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이클 이전에는 주로 대학 밴드들의 공연이나 디즈니 헌정 공연 등이 하프타임쇼를 메꿨지만 마이클 잭슨의 하프타임쇼가 본경기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보인 최초의 사례가 되면서 이후 [[U2]], [[프린스(음악가)|프린스]] 등 슈퍼스타들이 대거 출연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https://ew.com/article/1993/02/26/poll-michael-jackson/amp/|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의 62%가 마이클 잭슨을 인간적으로 존경한다고 답할 만큼 마이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많이 긍정적이었지만, 1993년 첫 번째 아동성추행 의혹이 터진 이후로는 부정적인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1980년대 후반 Wacko Jacko 논란으로 이미지에 피해를 입은 적은 있지만 그건 당시까지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성추행 의혹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결혼과 이혼의 반복, 백인동경설과 성형중독 의혹 등으로 인해 명예는 계속해서 실추됐다. 1995년 발매된 <[[HIStory]]> 앨범은 2,3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마이클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상업적으로 전작들과 비교하면 떨어지는 수준이었고, 2001년 발매된 마지막 정규앨범 <[[Invincible]]>은 800만 장의 판매고에서 그치며 비평적으로도 실패작으로 취급받는 등 이때가 마이클 잭슨의 음악 커리어 사상 가장 침체된 시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3년에는 두 번째 아동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재판까지 갔는데 2005년 미국 갤럽이 실시한 [[https://news.gallup.com/poll/15115/majority-americans-say-charges-against-michael-jackson-true.aspx|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의 75%가 마이클을 유죄라고 생각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있었을 정도로 여론은 극도로 악화됐다. 같은 해 재판 결과가 무죄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반응은 여전했다. 판결 직후 실시된 [[https://news.gallup.com/poll/16828/Instant-Reaction-Plurality-Public-Disagrees-Jackson-Verdict.aspx|여론조사]]에서 재판결과를 믿는다는 응답은 34%에 그쳤고 믿지 않는다는 응답은 48%나 됐다. 아울러 미국인들의 40%는 마이클이 더 이상 음악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했고 70%나 마이클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이 시절 마이클은 4년 연속 [[http://m.star.mt.co.kr/view.html?no=2006040214215993779&ref=|가장 어리석은 미국인]] 1위 자리에 오르는 불명예도 겪었다. 이후 마이클 잭슨은 별다른 외부활동을 하지 않다가 2009년 3월 영국 런던의 기자회견장에서 컴백 콘서트를 열겠다고 발표하는데, 당시 이 장면을 [[CNN]], [[ABC(미국)|ABC]], [[BBC]] 등 영미권 주요 언론사들이 정규방송까지 중단하며 긴급속보 체제로 들어서며 [[https://youtu.be/1XPyoq9s-kA|생중계]]했다. 영국 O2 아레나에서 열릴 50회 분량 75만 장의 티켓이 단 4시간 만에 모두 [[http://www.cnn.com/2009/SHOWBIZ/Music/03/13/michael.jackson.concerts.tickets/index.html|매진]]되었으며, 이는 신기록이었다. 마이클이 공연을 한다면 런던에 10억파운드의 경제적 효과가 창출될 것으로도 [[https://metro.co.uk/2009/05/08/michael-jackson-in-billion-pound-boost-to-economy-97543/|예측]]되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이 6월 25일 갑자기 사망하면서 컴백 콘서트는 결국 이뤄지지 못했고 대신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마이클 잭슨의 사망은 21세기 인터넷 산업 역사상 가장 큰 반응을 이끌어온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CNN]], [[BBC]] 등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긴급속보 체제로 마이클 잭슨의 사망소식을 연일 특집으로 보도했고 수억 명의 사람들이 검색 사이트에 'Michael Jackson'을 두드리면서 [[구글]]이 트래픽 과부하로 다운됐다. 당시 구글은 자신들이 디도스 공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세계 3대 검색 사이트 구글, 야후, 빙의 연간 [[https://abcnews.go.com/Technology/AheadoftheCurve/top-google-yahoo-searches-2009/story?id=9216094|인기검색어]] 1위가 'Michael Jackson'이었다. 아마존 닷컴의 데이비드 셀링거는 "그때 사상 최초로 사람들이 다 같이 인터넷을 무너뜨렸다. 거대한 규모로 전 세계를 하나로 모은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타임지]]는 9.11 테러 이후 처음으로 특별판을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09063096061#Redyho|발행]]했고 [[미국 의회]]에서는 재시 잭슨 목사의 주도하에 마이클 잭슨을 기리는 단체 [[https://youtu.be/HW2PEr8wEm4|묵념]]이 있었다. 이후 잭슨의 추모식은 [[FOX]], [[CNN]], [[BBC]] 등에서 생중계되어 세계적으로 약 10억 명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고 TV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모은 방송 중 하나가 됐다.[* 정확한 수치는 사실 모른다. [[https://www.abc10.com/mobile/article/tech/science/aerospace/apollo-11/apollo-11-moon-landing-remains-one-of-the-most-watched-tv-moments/507-84a186d0-4330-41a5-9a4b-c2134d6fa3e2|5억]]으로 보는 곳도 있고, [[http://www.bbc.co.uk/worldservice/programmes/090706_outlook_michaeljacksonmonkey.shtml?g0=2|10억]],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most-watched_television_broadcasts|20억]], [[https://m.economictimes.com/magazines/panache/from-beijing-olympics-to-michael-jacksons-memorial-service-here-are-the-most-televised-events-ever/amp_articleshow/54690707.cms|25억]]으로 보는 곳도 있다. 닐슨 [[https://uk.reuters.com/article/us-jackson-television-sb/michael-jackson-memorial-draws-31-1-million-u-s-tv-viewers-idUKTRE56774W20090708|집계]]에 의하면 마이클 잭슨의 추모식은 미국내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다이애나비]]에 이어 세 번째로 TV로 가장 많이 본 추모식이었다.] 마이클은 2009년 그해 가장 많은 앨범을 판 뮤지션으로 [[https://www.billboard.com/articles/news/960801/taylor-swift-edges-susan-boyle-for-2009s-top-selling-album|집계]]됐고[* 에 의하면 2009년 가장 많이 팔린 앨범 Top 40 [[http://www.mediatraffic.de/albums-2009.htm|순위]]에서 마이클이 앨범들이 5/6/11/13/19/20/24/25위를 차지했다.] 사망 이후 1년간 세계적으로 약 3,500만장의 [[https://www.hollywoodreporter.com/news/michael-jackson-death-anniversary-developments-341526|앨범판매고]]를 올렸다. 당시 마이클의 폭발적인 앨범판매량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빌보드는 메인차트 중 하나인 차트의 기존 규정을 [[https://ew.com/article/2009/11/10/michael-jackson-beatles-billboard-chart/amp/|변경]]하기도 했다.[* 원래 빌보드는 발매되고 18개월 이상된 앨범은 아무리 많이 팔려도 차트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었다. 즉 최신 앨범들만 해당차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의 앨범들, 그중에서도 특히 베스트 앨범인 가 당시 차트 1위에 올랐던 다른 가수의 앨범보다도 더 많이 팔렸음에도 해당차트에 오르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형평성 논란이 일었고 결국 빌보드는 2009년 12월부터 발매시기 제한을 없애게 됐다. 18개월 이상된 앨범은 <카탈로그 차트>라고 해서 별도로 순위를 집계했었는데, 카탈로그 앨범이 차트 1위에 오른 앨범보다 더 많이 팔린 경우는 앞서 말한 마이클 잭슨의 가 최초였다.] 2010년 VH1은 마이클 잭슨의 사망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순간 1위로 [[https://youtu.be/kx86O0jA7kc|선정]]했다. ||[youtube(rKHWk6Oww-Q, start=00:00, width=500, height=350)] || || [[파일:구글로고.jpg|width=100%]] || || 2009년 8월 29일 마이클의 생일에 걸린 구글 [[https://www.google.com/doodles/birthday-of-michael-jackson|로고]]. || 사망 이후 마이클 잭슨에 대한 여론은 기존의 부정적 기류에서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가령 2009년 [[CNN]]이 실시한 [[http://edition.cnn.com/2009/SHOWBIZ/Music/07/03/us.jackson.poll/index.html|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의 51%가 마이클의 팬이라고 응답한 것이나 CBS가 2013년 실시한 '미국인이 가장 다시 살리고 싶은 유명인' [[https://www.telegraph.co.uk/news/worldnews/northamerica/usa/10285146/Princess-Diana-tops-list-of-celebrities-Americans-want-to-bring-back-to-life.html|설문조사]]에서 [[다이애나비]], [[스티브 잡스]]에 이어 마이클이 3위에 오른 것, 또 2014년 가 진행한 [[https://today.yougov.com/topics/entertainment/articles-reports/2014/06/24/poll-results-michael-jackson|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들의 61%가 마이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69%가 각종 루머와 가십이 아닌 음악으로 마이클이 기억될 것이라고 응답, 또 가장 위대한 로큰롤 뮤지션 2위로 뽑는 등 실추됐던 명예가 서서히 회복돼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2018년 미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분전환하고 싶을 때 가장 듣고 싶은 뮤지션' [[https://nypost.com/2018/07/19/americans-will-try-anything-to-improve-their-mood/amp/|설문조사]]에서 마이클은 [[비틀즈]], [[이글스]]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파일:external/cdn.yougov.com/michael2.jpg|height=340px]] 당신은 마이클 잭슨에 대해 긍정적/부정적이십니까? 2003년 갤럽 조사 - 긍정 18% 부정 65% 2014년 Yougov 조사 - 긍정 61% 부정 32%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큰롤]] 뮤지션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파일:56b0bbe7090c76b00a2a.jpg]] 1위 [[엘비스 프레슬리]] 36% 2위 마이클 잭슨 21% 3위 [[존 레논]] 9% 참고로 2002년 [[ABC(미국)|ABC]]에서도 같은 여론조사를 했었는데 결과는 엘비스가 40%였고 마이클이 2%였다. 사후에도 인기는 꾸준하다. [[유튜브]], [[스포티파이]] 등 대표적인 스트리밍 사이트들에서 마이클은 사후 10년이 지났음에도 인기 아티스트 탑 100 차트에 거의 항상 이름을 올리며 누적 스트리밍 횟수 그리고 구독자수에서 역대 70위 안에 들고 있다.[* 유튜브가 매주 집계하는 [[https://charts.youtube.com/charts/TopArtists/global/20190913-20190919?hl=ko|인기 아티스트 차트]] 그리고 스포티파이 Monthly Listners 항목 참고. 2022년 8월 기준 누적 스트리밍 횟수는 유튜브에서 마이클이 111억 이상으로 전체 뮤지션들 중에서 [[https://kworb.net/youtube/archive.html|44위]]에 해당하고, 스포티파이에서는 96억 이상으로 [[https://chartmasters.org/most-streamed-artists-ever-on-spotify/|69위]]에 해당한다. 구독자수는 유튜브에서 2400만대로 전체 음악 채널 중 [[https://www.statsheep.com/p/most-subscribed-youtube-channels-music|37위]]이고, 스포티파이는 2,380만대로 [[https://chartmasters.org/spotify-most-followed-artists/|44위]]이다.] [[틱톡]]에서의 인기도 웬만한 현역 인기 뮤지션들에 밀리지 않는다.[* 2021년 8월 기준 틱톡에서 #Michael Jackson 해시태그가 달린 영상들의 총 [[https://www.tiktok.com/tag/michaeljackson|조회수]]가 90억회가 넘는데 이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슷한 수준이다.] 2014년 세계 최대 음악 데이터 분석 업체 가 무작위로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회원 20만명의 가입정보에서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항목을 조사한 [[https://time.com/11939/these-charts-show-what-your-gender-says-about-your-favorite-bands/|결과]] 대부분 2000년대 이후 인기가수들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와중에도 마이클이 여성에서 31위/남성에서 13위/종합 21위를 기록했다. 2017년 [[뉴욕타임즈]]의 조사결과 마이클은 당시 미국에서 현재 가장 인기있는 뮤지션 20위로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7/08/07/upshot/music-fandom-maps.html|집계]]되었다. 또 2019년 미국 여론조사 기관 에서 13~37세의 사람들 1,0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을 설문조사한 [[https://www.ypulse.com/article/2019/10/08/the-17-musicians-gen-z-millennials-say-represent-their-generations/|결과]] 마이클이 7위에 올랐다. 2021년에도 에서 13~39세 북미인/서유럽인 각각 1,300명을 대상으로 같은 조사를 실시했는데 마이클이 [[https://www.ypulse.com/article/2021/11/03/who-are-gen-z-millennials-favorite-music-artists/|북미]]에서 18위, [[https://www.ypulse.com/article/2021/12/07/these-are-european-gen-z-millennials-favorite-musicians/|서유럽]]에서 5위를 차지했다. 디지털 음원 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은 RIAA 공식 인증 미국내 [[https://www.riaa.com/gold-platinum/?tab_active=top_tallies&ttt=TAS#search_ssection|디지털 싱글 다운로드]]에서 4,100만회로 역대 29위이기도 하다. 2010년에 소니와 맺은 [[https://www.businessinsider.com/biggest-record-deals-2016-5|레코드 계약]]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역대 최대 레코드 계약금액 기록을 세우기도 했는데 계약금은 2억 5천만 달러였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의하면 2021년 기준 마이클의 음악 저작권 가치는 3억 7500만 달러로, 1위인 [[존 레논]]-[[폴 매카트니]] 듀오(5억 달러)에 이어 2위로 [[https://www.forbes.com/sites/arielshapiro/2021/06/07/rights-to-rodgers-hammerstein-worth-staggering-sum-more-than-bob-dylan-or-paul-simon-beatles-michael-jackson/|조사]]되었다. 포브스는 순수 잭슨 본인의 음악만으로 1년에 약 2000만 달러의 수익이 창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위키피디아]]에서 [[https://en.wikipedia.org/wiki/Wikipedia:Multiyear_ranking_of_most_viewed_pages|가장 많이 본 문서]] 7위는 'Michael Jackson'이며 페이지뷰가 1억 2,500만이 넘는다. [[페이스북]]에서도 마이클은 2018년 기준 약 [[https://fanpagelist.com/category/top_users/|7,400만 명의 팬]]을 보유하여 20번째로 팬이 많은 계정이기도 하다. 마이클의 음악은 현재까지도 다른 뮤지션들에 의해 많이 차용되고 있는데, 실제로 음악 분석 전문 사이트 에 의하면 [[https://www.whosampled.com/most-sampled-artists/|가장 많이 샘플링/커버/리믹스된 아티스트 순위]]에서 마이클은 각각 8위/5위/4위에 랭크됐다. [[빌보드 200]] [[https://www.billboard.com/charts/year-end/2019/top-billboard-200-artists|연말결산]]에서 마이클은 사후 2013년을 제외하고는 2020년까지 매해 70위 안에 들 정도로 앨범 역시 지금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 앨범판매량 집계 사이트 에 의하면 마이클은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어 약 3억 ~ 3억 5,000만장의 판매고로 [[http://www.mediatraffic.de/top-album-achievements.htm|역대 누적 앨범판매량]] 3위인데 이는 목록에 가장 많은 이름을 올린 아티스트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성인 이후 사망할 때까지 마이클 잭슨이 30년 동안 발매한 정규앨범은 6장 밖에 되지 않지만 그중 5장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00위> 안에 들었다는 것이다.[* 에 의하면 [[http://www.mediatraffic.de/alltime-album-chart.htm|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림 앨범 순위]]에서 [[Thriller]] 앨범이 6,600만 장으로 1위, [[Bad]] 앨범이 3,500만 장으로 10위, [[Dangerous]] 앨범이 3,200만 장으로 16위, [[Off the Wall]] 앨범과 [[HIStory]] 앨범이 2,000만 장으로 나란히 70위, 71위에 랭크됐다.] 피지컬 판매량만 고려한 과는 다르게 스트리밍, 음원 다운로드 등도 판매량 집계에 반영한 에서는 마이클의 전체 판매량을 3억 2,800만장으로 보고 비틀즈 다음으로 2위에 [[https://chartmasters.org/2020/05/cspc-mass-update-streaming/|랭크]]했다. [[위키피디아]]에서 공식 인증 판매량을 통해 집계한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best-selling_music_artists|자료]]에 따르면 마이클 잭슨의 앨범 판매량은 2억 7,700만 장이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2억 3,100만 장이다. 또한 요즘 팝스타들은 디지털 음원 판매량을 기본적인 앨범 판매 수치에 합산하고 실물 음반 판매량보다 디지털 싱글과 디지털 음원 판매 수치가 더 높은 경우도 많다. 뿐만 아니라 실물 음반의 생산없이 디지털 싱글만 발매하여 온라인으로 유통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 또한 앨범 판매량으로 집계된다. 그래서 디지털 음원 판매량까지 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식이다. 참고로 마이클의 미국내 판매량은 [[https://www.riaa.com/gold-platinum/?tab_active=top_tallies&ttt=TAA#search_section|RIAA 공식 인증]] 8,900만장으로 6위이다. 2014년에는 사후앨범 <[[Xscape]]> 수록곡 이 빌보드 HOT 100 차트 9위까지 오르면서 마이클은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50년대 연속 HOT 100 차트 Top10 안에 각기 다른 곡들을 진입시킨 유일한 뮤지션이 됐다. HOT 100 차트 1위곡이 13곡인 마이클은 가장 많은 빌보드 1위곡을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Billboard_Hot_100_chart_achievements_and_milestones|보유]]한 뮤지션 5위인데, 사실 [[잭슨 파이브]] 경력과 <[[We Are the World]]>까지 간접 포함하면 1위곡은 18곡에 달하나 솔로 기록과는 분리해서 보기 때문에 개인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한편 영국에서도 마이클은 인기가 많았는데 <[[Thriller]]> 앨범과 <[[Bad]]> 앨범은 각각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best-selling_albums_in_the_United_Kingdom|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6위와 9위에 해당하며 또 싱글과 앨범을 합쳐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artists_who_have_spent_the_most_weeks_on_the_UK_music_charts|UK 차트에서 최장기간 머문 뮤지션 순위]]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퀸(밴드)|퀸]]에 이어 마이클이 2020년 3월까지 누적 2141주간 머물러 3위를 유지 중이다. 2011년 [[NME]]에서 주관해 1,000만표 이상이 모여 순위를 정한 '가장 위대한 가수 Top 20' [[http://www.nme.com/news/music/michael-jackson-159-1276738|투표]]에서 마이클이 1위에 올랐으며 2016년에는 영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가장 좋아하는 남성 뮤지션' [[https://www.nme.com/news/music/david-bowie-uks-favourite-musician-1916042/amp|설문조사]]에서 4위에 뽑혔다. 2017년엔 영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최고의 음악 레전드는 누구인가를 [[https://newsroom.mastercard.com/eu/news-briefs/adele-and-bowie-named-ultimate-music-legends-by-britons/|설문조사]]했는데 마이클이 5위에 올랐다.[* 1위 [[데이비드 보위]](65%), 2위 [[비틀즈]](61%), 3위 [[퀸]](59%), 4위 [[엘비스 프레슬리]](58%), 5위 마이클 잭슨(58%)] 또 2018년에는 영국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자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앨범 Top 40'을 조사한 [[https://www.thesun.co.uk/tvandshowbiz/7271203/music-fans-say-michael-jacksons-thriller-album-is-most-inspirational/amp/|결과]] 앨범이 1위에 올랐다. 2020년에는 영국의 대표적인 음악 라디오 채널인 가 자국민 청취자 7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Best 500 Songs'를 [[https://www.smoothradio.com/news/music/all-time-top-500-full-chart-george-michael/|조사]]했는데 마이클은 총 20곡을 리스트에 올려 가장 많은 곡을 올린 뮤지션 순위에서 21곡으로 1위인 [[조지 마이클]] 다음으로 2위에 올랐다. || [[파일:경향신문 여론조사.jpg|width=100%]] || || 1984년 [[경향신문]]에서 11~14세 학생 2,3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50500329210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5-05&officeId=00032&pageNo=10&printNo=11878&publishType=00020|설문조사]]. 마이클이 인기가수 4위에 이름을 올렸다. ||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2010년 [[프랑스]] TF1 채널이 제작한 [[https://youtu.be/mPwaQtQotQw?t=1m|다큐멘터리]]를 보면 [[아마조니아]] 원주민들에게 그의 공연 영상을 보여주고 누군지 아냐고 물었더니 아이부터 노인까지 전원 이름까지 대며 안다고 대답했다. 마이클 잭슨은 [[대중문화]]의 중심지인 [[미국]]과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하나의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냉전|냉전 시대]]의 막이 내리고, 이후 각 나라에 국한되어 있었던 대중문화는 초강대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로 뻗어 나가는데, [[1980년대]]를 시작으로 당시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이었던 마이클 잭슨은 [[코카콜라]], [[맥도날드]]와 마찬가지로 다른 국가 사람들이 처음으로 보게 되는 [[미국]]의 상징이 된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게 마이클 잭슨은 미국의 기업가 정신과 [[인도주의]] 전형을 대표한다. 그는 당시 미국의 여러 기업이 자회사의 상품을 폭발적으로 수출한 것과 마찬가지로, 존재 자체로 1980년대, [[1990년대]]를 소비한 모든 사람들에게 문화의 상징이자 자본주의의 대명사였다. 이것이 그가 20세기, [[21세기]]에 걸쳐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된 결정적인 이유이다. 한국에서의 인기는 어땠을까?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시대를 산 사람들이 증언하길 산골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알 정도였다고 말했다. 1984년 경향신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41600329203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4-16&officeId=00032&pageNo=3&printNo=11861&publishType=00020|보도]]를 보면 멀리 떨어진 전라남도 다도해 섬에서도 주민들이 마이클의 노래를 콧노래로 흥얼거린다고 나와있다. [[동아일보]]는 '한창 인기가 절정인 [[조용필]]의 이름은 몰라도 마이클 잭슨의 이름을 모르는 젊은이는 없다던가. 국민학교 어린이까지도 그의 음악에는 열광한다'고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3210020920102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3-21&officeId=00020&pageNo=1&printNo=19220&publishType=00020|보도]]했는데 실제로 국민학교 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조사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10400209205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1-04&officeId=00020&pageNo=5&printNo=19463&publishType=00020|결과]] 마이클이 [[에이브러햄 링컨]], [[레이건]], [[에디슨]]에 이어 4위로 나온 적도 있다. 1989년에도 마이클은 국민학생 1,500명이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032&aid=0002937988|뽑은]] 가장 좋아하는 외국가수 1위에 올랐다. 시간이 흘러 마이클은 [[KBS2]] [[연예가중계]]가 2015년 전국 성인남녀 무작위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남성 팝 아티스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07/2015110702166.html?rsMobile=false|설문조사]]에서 1위로 선정됐고 2018년에도 같은 조사방식으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댄스가수> 부문에서 국내가수들을 모두 제치고 1위로 [[http://m.news1.kr/articles/?3289874#imadnews|뽑혔다]]. 2019년에는 <한국인이 가장 다시 보고싶은 별이 된 해외스타> 1위에 [[https://tv.naver.com/v/5477006|뽑혔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2006년 이후 지난 12년간 가장 많이 선곡된 뮤지션 [[http://m.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3588&Newsnumb=2018033588|순위]]에서도 마이클은 [[비틀즈]], [[퀸(밴드)|퀸]]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그럼 [[북한]]은 어떨까? [[김정은]]이 유학시절 유독 좋아했던 가수가 마이클과 [[휘트니 휴스턴]]이었다고 김정은의 [[https://www.nzherald.co.nz/world/news/article.cfm?c_id=2&objectid=11923535|동창]]이 밝힌 적이 있는데 2013년에 방북하여 김정은과 시간을 보낸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밝힌 [[https://www.voakorea.com/amp/1626718.html|일화]]를 봐도 만찬이 끝난 후 김정은 부부와 함께 마이클의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췄다고 하니 어느정도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북한은 2013년 미국을 미사일로 타격하는 [[https://youtu.be/VWrG7jzEZio|선전영상]]에서 <[[We Are the World]]>를 무단 도용해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전력이 있다. 아울러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도 한번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가디언지]]의 [[https://www.theguardian.com/music/musicblog/2011/feb/01/pyongyang-north-korea-michael-jackson|보도]]를 보면 찰스 젠킨스라는 한국전쟁 포로는 2004년에 탈출해서 2008년 기자와 인터뷰할 때 90년대 이전에 그가 접한 한국음악 이외의 유일한 음악은 러시아로부터 수입된 민족주의 노래뿐이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밀수입된 마이클의 카세트 테이프가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된 90년대 중반까지 그는 마이클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한 것을 보면 북한은 역시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파일:마이클 잭슨의 러시아 방문.jpg|width=100%]] || || '''마이클 잭슨의 1993년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 || 공산국가들에게 마이클 잭슨은 큰 문제였다. [[소련]]은 국영매체까지 동원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62000209204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6-20&officeId=00020&pageNo=4&printNo=19296&publishType=00020|흑인의 영혼을 팔아 백인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으며 미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들로부터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레이건 행정부를 돕는다]]'던가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71700209201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7-17&officeId=00020&pageNo=1&printNo=19319&publishType=00020|레이건의 파시스트 졸개이며 동족 흑인 전통의 반역자이며 이익을 위해 영혼을 파는 사기꾼]]'이라고 하기도 하고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92000329204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9-20&officeId=00032&pageNo=4&printNo=11995&publishType=00020|잭슨 열병이라는 바이러스균이 이제는 남미로 남하해 남미의 금을 모두 짜내려 한다]]'는 등 마이클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마이클의 음악은 사람의 혼을 빼놓는 것이라며 레코드점에서도 마이클의 앨범을 구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당시 [[타임즈]]의 [[http://amp.timeinc.net/time/5033766/thriller-michael-jackson-anniversary|보도]]에 의하면 소련에서도 불법 복제된 마이클의 카세트가 암암리에 널리 교환되고 소중히 여겨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마이클은 문호를 개방한 소련의 TV 광고에 등장한 [[http://edition.cnn.com/2009/SHOWBIZ/Music/06/26/Michael.Jackson.russia/index.html|첫 서방 연예인]]이 됐고 1993년엔 [[러시아]]에서 월드스타로서는 최초로 콘서트를 열기도 했는데 러시아 출신 [[대중음악]] 연구가 [[http://edition.cnn.com/2009/SHOWBIZ/Music/06/26/Michael.Jackson.russia/index.html|드미트리 바비치에 의하면]] 당시 마이클 잭슨의 콘서트는 단순히 [[대중문화]]뿐 아니라 러시아 역사 전반에서 큰 사건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마이클 사후 러시아 방송국 프로듀서 블라디미르 이바넨코는 러시아인들에게 미국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고 마이클이 바로 그 미국의 왕 같은 존재였다고 [[http://edition.cnn.com/2009/SHOWBIZ/Music/06/26/Michael.Jackson.russia/index.html|회상]]했다. 1988년 마이클의 [[서독]] 베를린 공연을 앞두고 [[동독]]의 비밀경찰인 [[슈타지]]가 비상상태였다는 [[http://content.time.com/time/arts/article/0,8599,1914581,00.html|비밀문서]]도 공개됐다. 슈타지는 베를린에 온 마이클 일행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일일이 행적을 문서로 남겼다. 장벽 인근에서 열릴 마이클의 공연으로 인한 사회 혼란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마이클의 공연을 보기 위해 동독 청년들이 경찰과의 충돌도 불사하며 장벽으로 몰려가 수습하기 힘든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슈타지는 고민 끝에 대형 스크린으로 마이클의 공연을 중계하여 이를 막는 계획을 세웠으나 정작 공연이 열리는 날 이 계획은 시행되지 않았고 결국 장벽으로 몰려든 청년들을 경찰들이 진압하다가 유혈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마이클 열풍은 대단했는데 언론들은 마치 태풍이 휩쓴 것 같다 하여 [[https://www.csmonitor.com/layout/set/amphtml/1987/0916/ojack.html|'Typhoon Michael']]이라고 불렀다. 한때 '감기에 걸려도 뉴스에 나올 사람이 일본에 세 명 있는데 마이클 잭슨, [[욘사마]], [[고이즈미]] 수상'이라는 [[http://enews.imbc.com/News/RetrieveNewsInfo/2105|농담]]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켄 오타케 [[소니 뮤직]] 일본 사장은 "마이클 잭슨은 비틀즈 이후 일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엔터테이너이며 일본 사람들의 마음에 항상 남아있는 존재"라고 [[https://www.billboard.com/articles/news/268216/michael-jackson-remains-a-global-phenomenon|말했다.]] 마이클의 사망 소식에 일본 언론들은 며칠간 많은 시간을 마이클에게 할애했고 특히 [[후지TV]]는 고정시청률 20% 이상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던 <퀴즈 헥사곤II>의 방송도 취소하고 2시간짜리 마이클 특집 방송을 편성하기도 했다. 정부 수석대변인과 장관들도 [[http://content.time.com/time/world/article/0,8599,1907367,00.html|애도의 뜻]]을 전했다. 2019년 [[후지TV]]는 개국 60주년을 기념하여 [[헤이세이]] 시대 [[메자마시 테레비]]의 지난 25년간 6,000회 이상의 방송을 분석하여 출연횟수를 기준으로 가장 인기가 많았던 해외 연예인을 [[https://ranranranking.work/mezamashiranking/|발표]]했는데 마이클이 1위였다. 폐쇄적인 기조를 유지한 [[중국]]에서도 마이클은 유독 인기가 있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가 매주 집계하는 서양 [[https://baike.baidu.com/starflower/starrank?rankType=7&lemmaId=170984&weekType=thisWeek|인기스타]] 목록에서 마이클은 2019년에도 거의 매주 1위에 오르고 있다.[* 중국 자국 연예인들까지 포함한 종합 순위에서도 마이클이 100위 안에는 거의 매주 들어가 있다.] 한 중국인 사업가는 '80년대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개방 시대를 처음 맞은 중국인들에겐 서양 문화를 상징하는 주제곡이었다'고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09&M=06&D=27&ID=2009062700142|회상]]했다. 마이클의 사망 소식에 국영방송 [[CCTV]]는 바로 특집으로 소식을 전했고 [[바이두]]는 특별 추모 사이트까지 [[http://m.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801|개설]]했으며 거의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1면을 마이클의 일생과 업적을 다루는 데에 [[http://www.danwei.org/front_page_of_the_day/a_nation_mourns_for_michael_ja.php|할애]]했다. 좀처럼 서양 연예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중국임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 [[파일:중국 마잭.jpg|width=100%]] || || 2009년 6월 27일 중국 주요 신문들의 1면. 마이클이 중국에서 공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 [[아프리카]]에도 마이클의 이름이 알려져 [[인종차별]]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https://www.billboard.com/articles/news/268216/michael-jackson-remains-a-global-phenomenon|보도]]됐다. 소니 뮤직 [[남아공]] 마케팅 디렉터인 던컨 깁본은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그동안 깊이 분열됐던 남아공 사회가 통합되는 분기점이 됐다고 말했다. 남아공 라디오는 인종적으로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으나 마이클의 음악이 처음으로 백인 팝 방송국과 흑인 R&B 방송국에서 동시에 울려퍼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는 마이클의 남아공 콘서트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흑인과 백인, 젊은이와 노인 관객이 모두 한데 어우러지는, 이전에 본 적 없는 광경이 연출됐다. 남아공 방송국 DJ 루피 응카이사는 "마이클은 흑인 가족들이 개인주의와 인종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토론하도록 하게 했다. 그래서 그의 문화적 영향력은 단순히 음악 이상의 것이다"라며 마이클을 추모했다. 아프리카의 흑인 빈민촌 소년인 제이콥은 제2의 마이클 잭슨이 되기 위해 춤을 따라 하고 있다니 아프리카의 빈민촌에도 그의 이름은 유명했다. [[유럽]]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방문하거나 콘서트를 하면 뉴스 메인 1면을 도배를 했고 그나라 대통령이나 최고인사들이 마이클 잭슨을 만나곤 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등 남미와 [[멕시코]], [[캐나다]] 등 북미 및 [[호주]]에서도 마이클의 앨범들이 역대 베스트 셀링 순위에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출처 참고.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best-selling_albums_in_Brazil|브라질]],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diamond-certified_albums_in_Argentina|아르헨티나]],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best-selling_albums_in_Colombia|콜롬비아]],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best-selling_albums_in_Chile|칠레]],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best-selling_albums_in_Mexico|멕시코]],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best-selling_albums_in_Canada|캐나다]],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best-selling_albums_in_Australia|호주]]] 특히 남미 최대의 음악시장인 브라질에서 마이클은 외국 뮤지션 중에는 두번째[* 1위는 스페인 가수 Julio Iglesias]로 높은 판매고를 올렸는데, 마이클의 사망소식에 [[리우데자네이루]] 시장은 바로 도시에 [[https://www.billboard.com/articles/news/268216/michael-jackson-remains-a-global-phenomenon|동상]]을 세우며 마이클을 기리기도 했다.[* 1996년 마이클이 They Don't Care About Us 뮤직비디오를 리우데자네이루 Dona Marta 지역에서 찍었는데 당시엔 마약범죄로 심각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 촬영 과정에서 마이클이 보여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선행, 그리고 뮤직비디오가 방송에 나간 후 높아진 도시에 대한 관심으로 오늘날 마약범죄에서 자유로운 안전한 도시로 변했고 여기에 마이클의 공로가 컸다고 판단하여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멕시코에서는 2009년 8월 마이클을 추모하기 위해 멕시코시티 광장으로 약 14,000명이 집결하여 마이클의 노래에 맞춰 춤을 선보였는데([[https://youtu.be/8S4cJ9aJGZ8|영상]]) 이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플래시몹]]으로 [[기네스 북]]에도 [[http://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largest-thriller-dance|등재]]됐다. 이시기 멕시코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의 마이클 헌정 플래시몹 열풍이 불었다. 또 <[[Thriller]]> 앨범이 나왔을 당시 [[이스라엘]]에 있었다는 S-Curve 레코드사의 창립자 [[http://edition.cnn.com/2009/SHOWBIZ/Music/06/25/michael.jackson.world/index.html|스티브 그린버그에 의하면]] 마이클은 [[중동]]과 [[동남아]]에서도 미국과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중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사 중 하나인 는 2019년 마이클 사망 10주기를 기념한 [[http://www.arabnews.com/node/1517811/lifestyle|기사]]에서 "잭슨은 중동에도 거대한 팬덤을 가지고 있다. 80년대 걸프 지역에서 처음 라디오가 잡혔을 때 헤비 로테이션으로 들을 수 있었던 최초의 슈퍼스타였다... 아마 잭슨은 본인의 음악이 중동에서 남녀노소 모든 세대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끼쳤는지, 얼마나 많은 팬들이 지금 여기에 있는지, 또 그가 시련을 겪을 때 팬들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그를 믿고 견뎌왔는지 몰랐을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마이클 사후 [[필리핀]]에서는 1,500명의 죄수들이 마이클을 기리고자 감옥에서 마이클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춰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https://youtu.be/mKtdTJP_GUI|영상]]) 월드 투어가 열린 나라마다 지도자를 만났던 유일한 가수다. 25개국 국가 수장들과 만났으며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에서는 5개의 부족장들과도 만났다. 특수부대까지 출동한 대통령급 경호 대접을 받았다. 이렇게나 많은 국가 지도자를 만난 아티스트는 마이클 잭슨이 유일하다. 한상철 팝 칼럼니스트는 “가장 거대한 임팩트(impact)를 가진 지구상 가장 완벽한 팝 뮤지션”이라고 평가하였으며 팝 DJ 김광한 씨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로큰롤의 제왕이라면 마이클 잭슨은 장르를 초월한 황제이다"라고 평가하였다. 뉴욕 록 라디오 방송국 WNEW-FM의 피디인 찰리 캔달씨는 “그가 굉장한 목소리와 다양한 스타일을 가졌으며, 귀신같이 춤을 잘 춘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는 모든 연령대와 모든 종류의 팝 청취자들에게 어필하죠. 이런 가수는 한 시대에 한 명 나올까 하는 가수죠”라고 평가하였으며 <빌리지 보이스>는“지금까지 스스로 작사, 작곡, 프로듀싱, 어레인지먼트, 의상, 스타일, 안무, 퍼포먼스, 영상, 자신의 이미지 로고 등을 직접 소화해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고독하겠지만 팝은 천재를 만난 것이다”라고 평가하였다. 각종 매체에서 선정하는 최고의 아티스트 순위에서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2007년 Q 매거진 편집자 선정 [[http://forums.stevehoffman.tv/threads/q-magazine-21-albums-that-changed-music.130311/|'음악사를 바꾼 21인'(무순위)]]에 마이클이 포함됐고 2010년에는 VH1에서 200명의 음악전문가와 현역 가수들을 상대로 한 투표에서 [[http://www.stereogum.com/495331/vh1-100-greatest-artists-of-all-time/franchises/list/|'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Top 100']] 2위를 차지했다. [[롤링 스톤]]은 2004년 로큰롤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특집 기사를 내보내는 가운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에서 마이클을 35위로[*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순위는 아티스트들간의 우열을 내림차순으로 정리한 순위가 아니다. 순위를 보면 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의 순위는 최고가 20위권~30위권대이다. 이 말은 즉슨 80년대와 90년대가 긴 록앤롤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음악적 영향력이 50~70년대 록앤롤 시대를 만든 선구자 아티스트들보다 낮다는 것으로 롤링 스톤 평론가(엄밀히 말해 다 평론가는 아니다, 롤링 스톤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투표하라고 했다고 소개했었다.)들은 평가했다는 것이다. 즉 마이클 잭슨이 80년대 팝의 역사에서 음악 산업을 뒤흔든 위대한 전설 중 한 명이 됐지만 그 영향력이 선대 로큰롤 선구자들과 비교하면 로큰롤 음악사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낮다고 본 것이다.], 2008년 [[http://www.rollingstone.com/music/lists/100-greatest-singers-of-all-time-19691231/jackie-wilson-20101202|'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100']]에서는 25위[* 이 외에도 위대한 ~ 시리즈를 몇 차례 더 뽑았는데 롤링 스톤의 이런 순위들은 당연하게도 위의 설명한 것처럼 로큰롤 역사 관점에서 본 것이기 때문에 50~70년대 로큰롤을 확립한 선구자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여기서 SInger는 좀 더 목소리, 보컬로서의 의미를 둔 것인데 가창력 순위는 절대 아니니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로 선정했다. 2005년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선정한 [[https://en.m.wikipedia.org/wiki/The_Greatest_American|'가장 위대한 미국인 100인']]에 포함되었다. 또한 2015년 [[빌보드]]는 마이클을 편집자들이 선정한 [[https://www.billboard.com/photos/best-r-and-b-singers-of-all-time-6737387/1-35-etta-james/|'역사상 가장 위대한 알앤비 아티스트 Top 35']]에서 1위 그리고 2016년에는 12명의 브라질 음악평론가들이 선정한 [[http://billboard.uol.com.br/noticias/o-artista-mais-completo-de-todos-os-tempos/|'역사상 가장 완벽한 아티스트 Top 50']]에서 2위에 랭크했다. 2014년에는 [[영국문화원]]이 설립 80주년을 기념하여 각계각층의 저명한 전문가 25명이 선정하고 전 세계 10,000명의 성인에게 투표를 실시하여 순위를 정한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4/nov/22/80-landmarks-in-80-years-that-shaped-our-world|'지난 80년간 세상을 형성한 가장 중요한 사건 Top 80']]에 컴퓨터 발명, 핵 개발 등의 사건들과 함께 마이클 잭슨 음악의 영향력이 49위에 뽑혔다. 또 같은해 미국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스미소니언]] 교육재단에서 전문가들이 분석하여 발표한 [[https://www.smithsonianmag.com/smithsonianmag/meet-100-most-significant-americans-all-time-180953341/|'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100인']]에도 이름을 올렸고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음악전문가 81명과 청취자 1,556명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한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4476200|'20세기 최고의 팝 아티스트']]에서 전문가와 청취자 모두 마이클이 3위에 선정됐다. 또한 2019년 [[빌보드]]에서 선정한 [[https://www.billboard.com/articles/columns/pop/8543668/billboard-all-time-top-125-artists-top-20-poll|'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에서 7위, 이후 [[https://www.billboard.com/articles/columns/pop/8543668/billboard-all-time-top-125-artists-top-20-poll|'빌보드 선정 탑20중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에서 450만 표 이상을 받아 1위에 자리했다. 인터넷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마이클 잭슨'이란 말의 의미를 다소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 3명은 대중음악 역사상 각자의 시대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단순히 음악적 경계를 떠나 하나의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전설 3인방(추가적으로는 스탠다드 팝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프랭크 시나트라도 여기에 드나 한국에서는 시나트라의 존재감이 거의 없기에 언급이 잘 안 된다.)을 뜻할 때 자주 쓰이는 것이다. 즉, 이 아티스트들이 다른 아티스트보다 더 위대하다거나 우열을 나누는 그런 걸 뜻하는 건 아니다. 엄밀히 정의하자면 로큰롤의 태동 시기인 50년대, 60년대와 팝의 시대인 80년대를 비교하기에는 [[대중음악]]은 사회-정치적 문화와도 긴밀히 연관되기 때문에 비교할 수도 없다. 마이클 잭슨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개선될 여지가 많다. 90년대 중후반부터는 논란이 되는 사생활 문제와 Wacko Jacko 이미지 때문에 평단이나 미디어들, 대중들에게 하도 까여서, 지난날의 명성들이 먹칠을 당했지만 잭슨의 사망 이후에는 그의 음악적 커리어를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